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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와 알키비아데스, 수처작주는 같았지만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9-20 17: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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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7)

알키비아데스는 손학규 전 대표가 머리로만 평면적으로 이해했을 수처작주의 행동원리를 온몸의 체세포로 입체적으로 터득했다. (사진출처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공식 홈페이지)안도키데스는 저명한 연설가였다. 그는 성상 훼손 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당해 감옥에 갇혔는데, 입심과 견주어 지력은 떨어지는 사내였다. 티마이오스 역시 동일한 죄목으로 수감되었다. 그는 명성과 언변 전부에서 안도키데스에게 뒤졌으나 다른 한 가지 종목에서 비교우위에 있었다. 머리의 영민함 즉 두뇌의 회전속도였다.

 

티마이오스는 안도키데스에게 허위자백을 하도록 종용했다. 그래야 정상참작을 받은 안도키데스도 살고, 다른 무고한 연루자들도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해서였다. 안도키데스는 티마이오스가 사주한 대로 자신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고백해 스스로는 면책권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공범으로 지목된 나머지 인물들은 전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피맛을 본 민중은 흡혈귀가 되고 만다. 시민들은 더 많은 사람의 피를 보기를 원했고, 그 불똥은 시칠리아에 머물고 있는 알키비아데스에게까지 마침내 튀었다. 민회가 아테네 해군의 기함인 살라미니아 호를 파견해 그를 압송해오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민회는 알키비아데스가 병사들을 선동해 반역을 도모하는 사태가 일어날까 봐 두려웠는지, 그를 최대한 정중하게 예우하며 데려올 것을 체포와 호송 임무를 책임진 승조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알키비아데스는 태조 이성계의 쿠데타와 충무공 이순신의 일편단심을 절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여겨질 절묘한 결정을 내렸다. 명나라가 점령한 요동을 정벌하라는 왕명에 불복한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한 후에 수도 개경으로 곧장 진격해 최종적으로는 왕위를 찬탈했다. 왜군의 소굴인 부산포를 치라는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이순신은 도성인 한양으로 추포되어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한 다음 삭탈관직이 되었다.

 

알키비아데스가 본국으로 억울하게 붙잡혀가게 됐다는 소식에 시칠리아에 파병된 아테네 원정군은 단박에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니키아스는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에는 패기가 모자랐다. 라마코스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매조지하기에는 지략이 부족했다. 알키비아데스가 직책에서 파면되면 원정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알키비아데스는 본국에서 그를 구인하러 도착한 관리들의 목을 베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테네로 곧바로 쳐들어가 정부를 전복하는 노골적 군사반란을 획책하지도 않았다. 그는 살라미니아에 탑승한 수병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하고는 그들과 힘을 합쳐 시칠리아 섬의 동북단에 자리한 메세네를 탈취했다.

 

메세네는 아테네 중앙정부에 충성을 서약한 도시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이곳을 기습적으로 점거함으로써 본국의 반대파에게 그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알키비아데스는 동포들에게 정면으로 칼끝을 겨누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인의 목숨이 걸린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조국은 물론이고 그를 낳아준 어머니조차 신뢰하지 않았다. 아테네는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무거운 형벌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서 사형판결이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당대 제일의 인재를 무고와 위증으로 옭아맨 이 엉터리 인민재판에 알키비아데스는 당연히 불출석했다.

 

이 무렵, 알키비아데스는 이탈리아 본토 남쪽에 위치한 투리오이를 거쳐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안에 들어선 아르고스에 당도해 있었다. 아르고스는 신변안전이 보장되는 공간이 아니었고, 알키비아데스가 이즈음 본국에 느끼는 감정은 서글픈 섭섭함에서 치가 떨리는 배신감으로 시나브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막히고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는 드디어 아주 독하고도 모진 결심을 한다. 적국인 스파르타에 투항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이제껏 그가 스파르타에 끼친 손해의 몇 배가 될 이익을 라케다이몬에게 선사하겠다는 사과와 맹세가 담긴 절절한 사상전향서를 작성해 스파르타 정부로 발송했다. 스파르타 당국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대어를 놓칠 리 없었다. 스파르타는 얼씨구나 좋다 하며 귀순용사 알키비아데스를 즉시 품안에 안았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최고의 꾀돌이 알키비아데스가 제안한 세 가지 책략을 주저 없이 받아들여 숙적 아테네와의 싸움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첫째는 명장 길리포스를 시칠리아 전선으로 보내 알키비아데스가 사라지자마자 길 잃은 가련한 어린양 신세가 돼버린 현지의 아테네군을 재기불능으로 박살내고 소탕한 일이었다.

 

둘째는 아테네와의 평화협정 파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일이었다.

 

셋째는 아테네 북쪽에 건설된 스파르타군의 전략요충지인 데켈레이아의 방어태세를 강화해 아테네의 숨통을 더욱 강하게 조인 일이었다.

 

스파르타는 항장인 알키비아데스의 아이디어를 왜 아무런 의심 없이 전폭적으로 수용했을까? 그 이유는 카멜레온보다도 더 빠르고 다채롭게 변화할 수 있다고 플루타르코스가 감별해놓은 알키비아데스의 놀라운 적응력과 탁월한 변신술에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전장에까지 전용 요리사를 대동하고 다닐 정도로 기름진 산해진미만 골라 즐겨온 사치스러운 미식가였다. 그런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 정착해서는 맛없기로 악명 높은 라케다이몬의 음식을 먹방의 유튜버들처럼 신나고 배터지게 포식했다. 그는 향수 냄새를 사방에 진동시키던 과거의 멋쟁이 시절을 싹 잊은 듯 더부룩한 장발을 하고서는 투박한 형태의 거칠고 조악한 싸구려 옷들에 기꺼이 만족했다. 토종 스파르타인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혀를 내두를 만큼 혹독하고 질박한 스파르타식 내핍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처작주(隨處作主)는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좌우명으로도 알려져 있는 행동수칙이다.


어디에 가서든 주류, 곧 인사이더(Insider)가 되라는 이 수처작주의 처세술을 손학규와는 달리 알키비아데스는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적용ㆍ실천했다. 그가 스파르타 왕국에서는 벌거벗은 근육질 짐승남이 되고, 웰빙의 원산지 이오니아의 도시들에선 무위도식하는 건달이 되고, 애주가들의 집합소인 트라키아 지방에서는 늘 고주망태가 되고, 명마의 고장인 테살리아 지역에서는 기마술의 달인이 되고, 말년에 페르시아에 귀부해서는 제국의 품격과 위세에 어울리는 목에 잔뜩 힘 들어간 권위주의적 꼰대가 되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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