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르포] 인천시 자체매립지 영흥도 가보니
  • 이영선 기자
  • 등록 2020-11-27 11:56:17

기사수정
  • “박남춘 시장, 영흥도 주민 모두 죽일 셈이냐” 마을 곳곳에 반대 현수막
  • 화력발전소 때문에 오랜 주민 갈등...이번에 또 매립지 갈등으로 번지나

26일 오후 인천시 자체 매립지로 선정된 옹진군 영흥면을 바라본 모습. 섬 뒤편으로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인다. (사진=이영선 기자)

영흥면 일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사진=이영선 기자)섬과 섬을 잇는 것은 철탑의 고압전선이었다. 작은 섬 뒤로 영흥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석탄재와 먼지, 소음으로 피해를 호소하던 영흥도 주민에게 또다시 쓰레기매립장이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혐오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천시는 친환경 시설로 짓겠다고 선언했지만 주민 반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6일 오후 1시께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에 들어서자 쓰레기매립장 건설 반대 현수막부터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석탄발전소 때문에 죽겠다!’(영흥면 총동문회) ‘쓰레기 매립장을 시청앞으로’(영흥 축구 동호회 일동) ‘우리마을 앞마당에 쓰레기 매립장이 왠말이냐!’(외1리 주민일동). 

 

현장에서 만난 영흥도 주민들은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났다’는 말로는 부족해 보였다. 이날도 쓰레기매립장건설반대투쟁위원회(건투위)는 시청 앞에서 3차 규탄 집회를 예정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회를 취소했다. 대신 영흥면 영흥늘푸른센터 앞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매립장 건설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정윤기 영암어촌계장은 마이크를 들고 박남춘 시장에게 영흥도 주민들의 분노를 알려야 한다며 반대 서명에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정 계장은 이날 “코로나19 확산때문에 집회를 열기가 어렵다. 영흥도 주민들의 반대 서명을 받아서 박남춘 시장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정 계장을 비롯한 영흥도 어촌계장들은 지난 18일 오전 수협 회의실에서 영흥수협어촌계협의회의를 열고 영흥도 쓰레기매립장 지정 결사반대 어업인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해양생태계를 파괴시켜 어업생존권을 위협하는 쓰레기 매립지 지정을 전면 취소할 것”을 인천시에 촉구했다.


“매립장 건설하려면 영흥도 주민 다 죽이고 해라”


26일 오후 영흥면 영흥늘푸른센터 앞에서 주민들이 매립지 건설 반대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이영선 기자)

일부 주민은 집회에서 사용할 현수막에 직접 반대 의사를 담은 문구를 적고 있다. (사진=이영선 기자)

서명에 나선 한 주민은 “가뜩이나 석탄발전소 때문에 영흥도 주민들 건강이 나빠졌는데 쓰레기까지 받으라고 하면 주민들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매립장을 지을 거면 주민들을 죽이고 지으라”고 분노했다.

 

건투위는 이날 시청 앞 집회에 사용할 현수막에 주민들의 반대 의사를 담긴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한 시민은 하얀색 페인트로 ‘결사 반대’ 등의 문구를 적었다. 

 

인천시가 ‘쓰레기 독립’을 선언하면서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에 ‘에코랜드’라는 이름으로 자체 매립지 건립을 선언했다. 쓰레기는 처리되어야 하지만 영흥도에 쓰레기를 묻어야 한다는 당위는 어디에도 없다. 영흥도 주민들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인천시가 이곳을 쓰레기 매립장 부지로 선정할 때까지 어떠한 접촉이나 주민 설득 작업도 없었다는 것이다. 

 

건투위 임현선 사무국장은 “인천시나 박남춘 시장이 매립지 선정 전후로 일체의 연락이 없었다”면서 “주민을 무시한 처사에 어르신들이 직접 1인 시위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라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건투위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집회는 자제하고 1인 시위나 기자회견으로 박남춘 시장에게 매립지 건립 지정 취소를 압박할 계획이다.


‘에코랜드’ 주민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인천시가 선정한 자체 매립지 '에코랜드'가 들어설 영흥면 외리 248-1번지 일대. 부지 뒤편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가까이 보인다. (사진=이영선 기자)인천시가 선정한 자체 매립지 에코랜드는 영흥면 외리 248-1번지 일대. 현장에 가까워지자 외1리 마을회관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외1리(소장골) 두 번 죽기는 싫다’(외1리 환경피해대책위원회). 마을회관은 노인정 겸 대책위 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마을회관은 반대 서명을 하러 갔는지 주민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화력발전소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또다시 매립지가 생긴다니 두 번 죽기 싫다는 외침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외리는 옛날에 서당이 있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으므로 서장골(書藏洞)로 불렀다 하고,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지내던 정자가 있어 이를 서정(書亭)이라고 하여 서정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인천시청 지명유래 발췌). 시대가 변하면서 선비의 마을은 이제 매립장으로 변할 처지에 놓였다.

 

마을회관에서 500여m를 더 가니 갈대밭 숱으로 둘러쌓인 넓은 부지가 나왔다. 그 뒤쪽으로 영흥화력발전소가 보였다. 한 눈에도 꽤 넓어 보이는 부지 앞에 철조망이 처져있고 입구엔 매립지 공모를 신청한 ㈜원광인바이로텍이 붙여놓은 출입금지 팻말이 보였다. 주변에는 새우 양식장과 외1리 주민들이 추진하는 어촌체험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소로길에 인적은 없었다. 

 

원광인바이로텍은 현재 영흥화력발전소의 회처리장 대상 부지를 소유한 회사로 매립지 선정 발표 전까지 한국남동발전(주)과 소유권이전에 따른 가등기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영흥화력발전소 1~2호기는 2034년, 3~4호기는 2038년 종료돼 더 이상 회처리장 설치가 불가한데 이번 매립장 공모에 이 회사 한 곳만 공모에 응했고 선정됐다.

 

화력발전소 때문에 오랜 주민 갈등 겪었는데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햋빛을 받아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영흥화력발전소와 인접한 외1리 주민들은 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와 석탄가루로 인한 피해를 호소해왔다. (사진=이영선 기자)

외1리는 영흥화력발전소와 인접해 있어 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와 석탄가루로 인한 피해를 호소해왔다. 

 

지난 2017년에는 외1리 부녀회가 심어놓은 배추에 석탄분진이 덮어버린 뒤로는 배추조차 심지 못하고 있다. 바람이 마을 쪽으로 불면 창문을 열지 못하는 건 일상이고 빨래조차 널지 못한다고 마을 주민들은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립지가 들어선다니 마을 공동체가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매립지로 조성한다고 하지만 대형 쓰레기 차량이 마을을 오가면서 먼지와 소음으로 인한 피해도 겪게 될 것이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으로 주민간 갈등으로 번진 사례가 있어 이번 매립지 건설로 이러한 찬·반 갈등이 재현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자리 등을 얻을 수 있게 된 마을 주민과 환경오염에 따른 피해 입은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또 다른 불씨가 될 공산이 크다.

 

영흥도 한 주민은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때도 그렇고 이번 매립지 건립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다. 일자리도 생기고 먹고 살거리가 생겨나서 반기는 주민도 있지만, 환경오염에 따른 어업 생존권을 위협받은 어민들은 반대할 것이다”라며 또 한번 주민갈등이 재현될 것을 우려했다.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섬 33곳 중 한 곳인 선재도에서 바라본 영흥도 일몰. (사진=이영선 기자)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초격차 스타트업, 바이오 코리아 2025에서 세계 무대 도전장”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원하는 바이오 초격차 스타트업 24개사가 ‘BIO KOREA 2025’에 참가해 글로벌 기술 협력과 투자 유치에 나서며, 세계 무대에서의 본격적인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중소벤처기업부는 5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BIO KOREA 2025 International Convention(이하 바이오 코리아)’에 바이오 분야 초격차 스타.
  2. 윤호중 “이재명 재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 폭거…5.12 이전 공판 중단해야” 더불어민주당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가 6일 첫 총괄본부장단 공개회의를 열고, 대법원의 최근 판결을 ‘사법쿠데타’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대선 전 이재명 후보에 대한 재판 강행은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윤호중 총괄선대본부장은 6일 오전 중앙당사 회의실에서 열...
  3. 인천시의회,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 모집…의정 참여 확대 인천광역시의회가 의정활동을 시민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을 오는 21일까지 모집하며, 시민의 의정 참여 기회를 한층 넓힐 전망이다.인천광역시의회는 의정활동과 지역 소식을 시민들에게 보다 가깝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인천의정소식’ 시민기자단을 모집한다고 6일 밝혔다. 모집...
  4. 권영세 “대선 단일화 11일까지 반드시 이뤄야…실패시 비대위원장 사퇴”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후보 단일화 시한을 5월 11일로 못박으며, 단일화 실패 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문수 후보와 만나 오해를 일부 해소했고, 협의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며 “그러나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 시한...
  5. 광복 80주년 맞아…수원 독립운동길 걸으며 항일의 얼 되새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개발한 4.5km의 근대 인문기행 코스 ‘대한독립의 길’이 일제강점기 수원의 항일정신과 독립운동의 현장을 고스란히 전하며 시민들의 역사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수원시는 일제강점기 격렬한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의 길’ 인문기행 코스를 개발해 시민들이 독립..
  6. 인천시, ‘3.6.9. 걷기 챌린지’로 건강도 챙기고 상품권도 받는다 인천시가 걷기를 통한 시민 건강 증진과 생활 속 운동 실천을 장려하기 위해 5월 7일부터 27일까지 ‘제2차 인천 3.6.9. 걷기 챌린지’를 운영하며, 참여 시민에게는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을 제공한다.인천광역시는 시민의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을 위해 모바일 앱 ‘워크온’을 활용한 ‘인천 3.6.9. 걷기 챌린지’를 진행한.
  7. 광명시, 시민이 작가 되는 ‘책문화 창작 여정’ 본격 추진 광명시가 글쓰기부터 독립출판, 책 전시와 출판기념회까지 전 과정을 연계한 시민 창작 플랫폼 조성사업을 시행하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책문화 도시로의 도약에 나섰다.광명시는 5월부터 ‘쓰기부터 출판까지 시민 창작 플랫폼 조성사업’을 본격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시민이 단순 수강자가 아닌 창작자로서 글을 쓰고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