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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희⑩, “김대중 대통령 특명으로 옥중의 박지만 씨 면회해”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1-19 21: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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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과 김영삼 같이 큰 그림을 그리려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김대중과 김영삼,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들 밑에서 정치를 했던 인사들의 대부분은 이미 현실정치에서 손을 뗀 지 오래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참모들 뒤로 숨는 소심한 새가슴 유형의 인물들이 연달아 집권하면서 직접 전면에 나서서 결단하고 책임지는 정면승부의 리더십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가 사회 전반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복고풍(Retro) 열기를 타고서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역사의 지평이 아닌 시사의 차원에서 접해본 세대의 한 사람이다. 조은희로부터 DJ와 YS가 생전에 보여준 각각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대중 대통령, 정적의 2세들도 품고 껴안아


조은희(왼쪽) 구청장이 올해 초에 쏟아진 기습폭설의 제설작업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서초구청)

조은희(이하 조) : 제가 국민의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된 건 당사자인 저도 진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들어간 청와대였지만 저는 그곳에서 참 많은 내용들을 배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이른바 적폐 청산에만 매달려온 문재인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기조와 방향으로 국정운영에 매진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도 동서화합을 간절히 열망하는 분이셨습니다. 김중권 전 의원이 김대중 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일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 아래에서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일하고 있을 시절이었어요. 국제통화기금에서 한국에 구제금융 제공의 조건으로 제시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경주관광개발공사를 없앤다는 소문이 무성했었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한참 추진할 때였으니까요.

 

조 : 그 소식을 들은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유무형의 유교문화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유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말씀드리면서 경주관광개발공사를 폐지하는 일보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해온 유교적 자산의 보존과 창달이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건의를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께서 뜻밖에 제 건의를 흔쾌히 받아들이시면서 애당초 폐지될 운명에 놓였던 경주관광개발공사를 경북관광개발공사로 오히려 확대개편을 시키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그와 같은 안목과 결단이 없었으면 경주관광개발공사는 기획재정부에 의해 곧 해체되고 말았을 거예요.

 

경주관광개발공사가 경북관광개발공사로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한 덕택에 경상북도 지역 곳곳에 분포한 여러 서원들이 수많은 방문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아오는 치유와 명상의 명소들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의정부에서 활동할 시기에는 문화재청이 문화재관리국으로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문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대통령께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그리고 활용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문화재관리국을 청으로 승격시키자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저의 이 의견도 즉각 수용하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저의 책 제목인 「귀를 열고 길을 열다」처럼 귀가 열려 있는 통치자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대해서도 전향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저는 김대중 정부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2백억 원의 국가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러한 결정 때문에 많은 국민들로부터 호되게 비판당했었습니다. 저도 김 전 대통령의 해당 결정에 대해선 여전히 매우 부정적입니다.

 

조 : 제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박지만 씨 면회를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서 간 일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대외적으로 아마 처음 공개하는 비화일 거예요.

 

당시에는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는 데에도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가 여러모로 편의를 제공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대영제국 국가원수 자격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공식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던 일이 박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에 영국을 둘러보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지만 씨는 김대중 대통령을 심지어는 살해하려고까지 시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2세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적의 아들딸들을 흔쾌히 도와줬습니다. 일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그러한 포용적 조치들을 지극히 정략적인 계산의 일환으로 깎아내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립과 대결 대신에 화해와 통합을 추구한 김 대통령의 아량 있는 용단은 아무리 높이 평가받아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적폐 청산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른 통 큰 정치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국민통합과 동서화합을 위해 애쓰시던 모습을 옆에서 직접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런 저의 경험적 입장에서는 맹목적이고 무리한 적폐 청산 드라이브가 우리나라의 장기적 발전과 국민들의 지속가능한 행복에 과연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인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정치인의 큰 그림에는 통합과 성장이 자리해야


DJ(왼쪽)와 YS가 긴밀히 모종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IMF 관리체제의 극복을 목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첫머리에 등장한 방도가 정보통신(IT) 산업의 적극 육성이었습니다.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등의 국책사업들에 당시 물가를 기준으로 10년간 80조 원을 쏟아 붓는 계획을 수립해 집행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즈음 우리나라 1년 정부 예산은 70조 원을 약간 웃돌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국민통합에, 경제적으로는 신성장동력의 창출에 국정운영의 확고부동한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회심의 야심작이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참담하게 실패하고,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는 지금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실천하고 증명했던 과감하고 미래지향적인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들 가운데 특히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온 게 일본의 대중문화에 우리나라 시장을 개방하는 시책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처리하면서, 미래는 미래대로 나아가게 하는 실용적 노선의 외교에 주력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결정은 우리나라 문화시장을 일본에게 내주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습니다. 역으로 한류가 일본 대중문화 시장을 석권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체득한 가장 큰 교훈은 정치꾼이 되지 말고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공 : 국민의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의 상당수가 참여정부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구청장님께서는 참여정부에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라도 작용했나요?

 

조 :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를 나온 다음에는 제가 왕따가 돼 있었더라고요.

 

공 : 누가 구청장님을 따돌리고 소외시켰나요?

 

조 : 저는 민주당 안에 정치적 기반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 이유가 컸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가 청와대를 떠난 이후 김대중 대통령께서 제 안부를 종종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저와 민주당 사이에 연결지점이 좀처럼 생겨나지가 않더라고요.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민주당이 분당돼 나간 사태를 계기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으로 변신해 있는 민주당 계열 정당의 주류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교동계 정객들로부터 전대협으로 상징되는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로 바뀌었다. 동교동과의 인연은 있었어도 학생운동권과의 인적 네트워크는 별로 단단하지 않았을 조은희 전 청와대 비서관이 자연스럽게 민주당과 소원해진 일은 그리 놀라운 사태전개는 아닐 듯싶다.

 

제도정치권에서 제 후견인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없는 까닭인지라 저는 외톨이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약진했으면 제 진로와 처지가 조금은 달라졌겠죠. 그렇지만 김 전 실장님도 국민의정부가 막을 내린 이후에는 별다른 정치적 활로를 찾지 못하고 말았어요. 그때부터 10년간이 저에게는 광야에서의 거칠고 외로운 삶이었습니다.

 

공 : 심하게 말하면 끈 떨어진 셈이셨네요.

 

조 : (약간 서글픈 목소리로) 그렇죠, 김대중 대통령님과의 연락도 잘 되지 않았고….

 

공 :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력에서 내려오니 구청장님께서도 앞길이 막막해진 거네요.

 

조 : 예. 제가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였어요.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에 한참 불타오를 때였습니다. 실제로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10년 동안 어디에도 확실하게 속할 수가 없었어요.

 

공 :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단체전 위주의 사회라 소속팀이 없으면 항우장사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조 : 저는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 있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런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 부재한 탓에 현재의 정치권이 매일 지나간 일 뒤지고 캐는 데만 열중하고 있어요.

 

대화의 초점은 DJ로부터 YS로 넘어갔다.

 

제가 생전의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직접 일을 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대신에 정치부 기자로 취재활동에 나서는 과정에서 YS를 관찰해볼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을 믿고서 전폭적으로 일을 맡기는 분이셨습니다. 혼자 일을 독차지하지 않고 중간관리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에게 역할과 권능을 기꺼이 나눠주는 유형의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람들을 믿고서 일을 나눠주면 그 일은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면서 뚜렷한 진전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 : 보통 그걸 권한 위임(Empowerment)의 리더십이라고 칭하더라고요. (⑪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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