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IMF 때도 안 됐다
이인제 전 의원만큼이나 유명한 게 이른바 ‘이인제법’이다. 이인제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 공직선거법 57조 ②항이 정식 명칭인 이 법안은 특정 정당의 경선에 참여했다가 낙선한 후보자는 당해 선거의 동일한 선거구에서는 아예 후보자로 등록할 수조차 없게끔 원천봉쇄를 해놓고 있다.
이런 희한하고 엽기적인 법률까지 탄생한 데에는 ‘경선불복’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고질적인 후진성이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지켜야만 할 일을 지키지를 않으니 아예 법으로 준수를 강제해버린 셈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골간으로 채택하고 있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1표라도 무조건 더 얻으면 당선자가 되어 가슴에 영광스러운 금배지를 달 수 있는 구조이다. 승자를 배출하지 못한 표들을 의미하는 사표를 줄이기 위해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가 소수 정당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과연 이 제도가 내년의 21대 총선에서 실제로 실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혁명보다도 더 어려운 과제가 선거법 개정이라고 평가되어온 탓이다. 저 춥고 스산했던 IMF 관리체제 시절에조차 바뀌지 않은 게 한국정치의 현존 선거법이다.
광명은 강남이 아니다
현행 국회의원 임기 동안인 4년간은 어느 지역구이건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역에서 선출된 지역구 의원에게 지역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위임할 수밖에 없다. 여기로부터는 현재는 무소속 국회의원인 이언주 의원을 19대 총선과 20대 총선 두 차례에 걸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보내준 경기도 광명을 선거구의 유권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의원은 지난 두 차례의 총선 모두에서 과반수가 넘는 높은 득표율을 이곳에서 연달아 기록했다.
구로, 금천, 광명, 부천, 시흥 같은 서울 서남권과 경기도 서남부 지역은 관내에 출세한 사람, 돈 많은 사람, 이름난 사람, 사회적으로 영향력 끼치는 사람이 살지 않기로는 결코 남부럽지 않는 동네들이다. 이러한 힘없고 가난한 지역들에서의 권력서열 순위는 아주 단순명쾌하다. 1위는 지역구 국회의원, 2위는 시장 또는 구청장, 3위는 시의회나 구의회 의장이다.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 혹은 송파구 등의 부자 동네는 분위기가 이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가령 강남구의 경우 그곳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비교해 훨씬 힘세고 막강한 소위 파워엘리트 인사들이 최소한 수천 명은 될 터이다. 강남구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이 강남에서 발생하는 다종다양한 민원과 문제들의 처리를 설령 등한시한다고 하여도 강남구에 거주하는 끗발 좋은 고위관료들,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 교수들,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과 방송사 PD들, 그리고 이런저런 유력 시민사회단체의 수장들과 활동가들이 강남구 유권자들의 불편과 고충을 깨알같이 세심하게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강남구 사람들은 굳이 지역구 국회의원쯤 없어도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살 수가 있다.
광명은 어떨까? 여러분들은 광명시에 살고 있는 고급 공무원을, 대학 교수를, 여론 주도층을, 기자와 PD를, 시민단체 관계자를 도대체 몇 명이나 알고 있는가? 정두환 바른미래당 금천구 지역위원장은 명색이 서울시의 25개 자치단체들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금천구에는 단 1명의 서울대 교수도 살고 있지 않다고 씁쓸한 어조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개탄한 바가 있다. 광명이라고 해서 금천보다 형편이 얼마나 나을지 몹시 의문시된다. 두 동네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이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면 지역구의 시급한 현안들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형국으로 표류하기는 매한가지 사정인 이유에서다.
유권자는 선금 주는데 정치인은 먹튀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주는 표는 일종의 선금계약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이후로 4년 동안 다른 쓸데없는 일들에 신경 쓰지 말고 선출된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전력을 기울여 대변하라는 지역구 유권자들의 준엄한 명령이다. 헌법에야 국회의원이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국회의원을 만들고 움직이는 실질적 동력은 다름 아닌 지역구 유권자들의 투표와 주시다. 헌법은 이상이고, 지역은 현실이다.
이언주 의원은 당명에 ‘민주당’ 세 글자가 포함된 정당들의 공천장을 받아 2연속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이언주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지금은 이마저 나와 무소속 상태로 머물러 있다.
잦은 당적 변경은 사실 특별히 이언주 하나만 골라서 욕할 행동은 아니다. 참여정부의 2인자이며, 문재인 정권의 ‘장외 실세’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을 바꾸는 것도 모자라 여러 정당을 만들고 깨고, 또 만들고 깼다. 이언주가 철새 수준이라면, 유시민은 철새에 더해 정당 브레이커까지 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수시로 당을 옮겨 다닌다고 이언주 한 명만 콕 집어 비난하기가 어려운 시대적 배경이고 본질적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언주 의원은 이 부분만큼은 반드시 엄혹한 비판과 질타를 받아야만 한다. 그가 자기를 두 번씩이나 선량으로 뽑아준 광명시 유권자들에 대한 신의와 약속을 지금 철저히 어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언주 의원이 다음번 총선에서 어떤 정당의 공천을 받아 3선 의원의 고지에 도전할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이건 전국구 단위의 미스터리다. 이언주 의원이 내년 선거에서 어느 지역구에서 출사표를 던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건 광명을 차원의 수수께끼다.
이언주 의원은 어느 정당으로 나가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어디에서 선거에 나갈 것인지는 이제는 솔직히 밝혀야만 한다. 그리고 선거법상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기간 전까지는 광명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해야만 한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유권자들의 지지는 선불로 당겨 받은 계약금이다.
김부겸의 결단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공천을 준 정당을 떠나는 결정은 모질고 혹독한 비판을 당해왔다. 반면에 자신을 당선시켜준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 출마하는 결심은 비판은커녕 되레 극찬과 미화를 받아오곤 했다. 이를테면 집권여당 소속의 4선 중진 의원인 김부겸 의원은 그를 3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준 군포를 떠나 지역주의 타파에 앞장서겠다며 대구 수성구 출마를 감행했었다. 이는 군포시민이 김부겸의 대구 지역 출마에 필요한 요긴한 발판 내지 귀중한 밑천 구실을 12년 동안이나 해줬다는 소리밖에는 안 된다.
필자는 율사가 아니다. 전문적인 법조문을 성안해낼 재주와 자격도 없을뿐더러 그럴만한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래도 「(가칭) 이언주법」의 구체적 방향성에 관해 한마디 정도는 보태고 싶다. 나도 정당하고 합법적인 투표권을 보유한 대한민국 주권자의 한 사람이므로.
나는 만약에 「이언주법」이 발의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특정한 지역구에서 선출된 현역 국회의원은 그 다음 선거의 공식선거운동이 개시되기 직전까지는 다른 선거구에 가서 선거운동 또는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공천을 준 당을 버리는 건 선수들끼리의 약속을 깨는 일이지만, 당선시켜준 지역을 버리는 건 유권자들과의 맹세를 배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수들끼리의 배신과 배반은 업계만의 일이지만, 국민들과의 약속 파기는 근본적으로 나랏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