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투데이=안정훈 기자]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후에는 감염병의 대응을 넘어 예방부터 책임지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학계 전문가들은 질병관리청을 질병‘예방’관리청으로 바꾸고 보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질병예방관리청,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역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감염학회 ▲한국보건행정학회 ▲대한보건협회가 공동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감신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발제에 나섰다. 토론에는 박은철 한국보건행정학회장, 천병철 대한보건협회장, 나성웅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 신성식 복지전문기자가 나섰다.
의료계가 질병예방관리청에 주문한 것들
감신 이사장은 “국가주요질병관리를 위한 전문행정기관이 필요하다. 감염병은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하고, 치료와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이 균형을 맞추는 패러다임이 요구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각종 사회과학까지도 포함하는 지식 및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산과 전문인력을 확보한 조직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와 질병예방관리청의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그는 복지부는 ▲타 중앙부처와의 조정 및 연계 ▲질병관리 관련 각종 법규 관리 ▲행정지원 업무를, 질병(예방)관리청에는 ▲주요 질병 관리를 위한 연구 ▲정책개발과 사업 관리 및 사엽 평가 업무를 제안했다.
김 이사장은 “예방과 치료간 균형,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예방이 삶에 자리잡고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현대 우리 사회의 요구”라며 “기능강화 차원을 넘어서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다”며 질병예방관리청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동현 한국역학회장은 질병예방관리청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내부에 공중보건원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건강결정을 하는 요인이 단지 의학적 요인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같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중보건학 관점에서 건강과 질병문제, 위기를 포함해서 풀어가고자 하는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며 “질본 개편의 가장 핵심적 내용이 공중보건원의 신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질병예방관리청에는 ▲컨트롤타워에서도 전략기획 능력이 있는 센터 ▲건강통계센터 기능 ▲역학조사센터 ▲역학 및 방역대응 연구사업 등 공중보건연구 기능 ▲지역중심 질병예방관리 및 방역대응 능력 등 5가지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에 대비해서 보면 (질병예방관리청은 코로나19 사태를) 의학적, 공중보건학적, 사회적 문제에서 총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컨트롤타워’ 기능 강조···“응급의료·재난대응 연계 통합해 컨트롤타워 역할 해야”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향후 질병예방관리청은 단순한 방역을 넘어서서 의료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 학회의 생각”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감염병이나 만성병 중심에서 응급의료와 재난 대응까지 연계 통합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이사장은 향후 질병예방관리청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 지방정부에도 각각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병원에서도 병원 간의 연계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방청-지역소방본부-지역 소방서의 관계를 도입해 질병예방관리청-지역질병관리본부-보건소 방식을 구축하자고 건의했다.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질병예방관리청은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관이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의사출신 장기근무자가 거의 없는 등 인력 전문성이 부족하고, 계획했던 예산은 복지부와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삭감되거나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행정기관에 가까운 현 상태에서 벗어나 전문기술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이사장은 질병관리청에 ▲전문성과 독립성 보장 ▲세계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 ▲과학적 근거 기반의 질병 정책 수립 ▲전문가 인재 양성 ▲질병 관련 정책-실행-연구-교육의 연계 등을 주문했다.
“보건부-복지부 분리 필요”
토론 중에는 질병관리본부의 독립에 나아가 장기적으로 보건복지부가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은철 한국보건행정학회장은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했으니) 좋아는 질 것이다. 그러나 획기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청이나 처가 아니라 보건부로 독립시켜야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회장은 “보건복지부의 구조를 보면 보건이 4고 복지가 6이다. 코로나19 같은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항상 복지 분야 전문가들이 장관을 맡는다”며 “이 구조로는 다음에 올 신종 감염증을 막는 데 또 제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천병철 고려대학교 교수(대한보건협회)는 질병관리본부가 사후에 대처하는 기관이 아닌 예방에 나서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도에 사스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엔 직접 환자가 없었지만 홍콩, 중국에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하고 온 국민이 공포에 떨었다”며 “사스가 끝날 때쯤 국립보건원 대강당에서 대통령께서 사스 방역에 공로자분들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질본을 설립하겠다는 발언을 하셨다. 꼭 이렇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예방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앞으로 가면 갈수록 정부의 역할도 이미 있는 환자 관리에서 국민 건강을 더 건강하게 하는 건강증진과 예방사업에 방점을 찍게 될 것”이라며 “(질병관리본부가 승격할 기관의 명칭이) 청이든 처든 ‘예방’이 들어가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지부-질본 분리하더라도 교류·시너지 있어야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는 박은철 회장의 주장에 “보건부의 독립에는 찬성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도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했다. 보건복지부 정책을 익힌 것”이라며 “(질병관리본부가 보건복지부로부터) 떨어지면 인사교류가 불가능해진다. 당분간 보건복지부 공무원과 질병관리본부 공무원이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협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를 대표해 참석한 나성웅 건강정책국 국장은 “질병관리청을 만들었으면 무엇을 해결하길 바라며 청으로 승격했을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을 만들면서 관련 정책·제도·조직·평가 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켜서 국민들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 국장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지금은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당장 떨어졌을 땐 통합적인 시너지가 없어진다. 떨어지면 어떤 미션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들은 누가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의 주최자인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규모 감염병의 특성상 일단 발병과 감염이 시작되고 나면 그로인한 사회적 비용과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은 발병 이전 단계에서부터 예방하고 방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희가 질병관리청이 아닌 질병‘예방’관리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