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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관리하면 죽고 도전하면 산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7-20 0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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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낙연 대세론’은 어떻게 신기루가 되었나

이회창, 현재를 지키고 미래를 잃다

 

더불어민주당은 21세기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기득권 집단이다. 이낙연 의원은 기득권 집단인 더불어민주당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평범한 국민들에게 ‘이낙연=기득권의 수호자’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 이낙연 페이스북)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낙연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자기는 흙수저이고, 이낙연은 엘리트라는 주장이다. 엘리트는 상당히 수위를 조절한 조심스러운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재명은 이낙연을 ‘금수저’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애써 꾹 참고 눌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 만으로 1년간 전개되어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증명됐듯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 나와서 특권적 삶을 살아온 한국사회의 출세하고 부유한 기득권층을 겨냥한 힘없고 가난한 인민대중의 원한과 적개심은 언제 곧 폭발할지 모를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이재명 지사의 열혈 지지자들은 그를 2002년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자가 위치했던 곳으로 진즉에 밀어 올렸다. 주인공은 위력적인 악역이 있어야 더욱더 빛나는 법이다. 2002년 한국을 강타한 ‘노풍’의 역설적 주역은 특권과 반칙의 화신으로 그려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였다. 이회창 대신에 이부영이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면 당시의 집권세력은 ‘진보서민 대 보수귀족’의 구도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쾌재를 부르며 꺼내들지 못했으리라. 한나라당 관점에서 회억해본다면 자기들 죽을 길로 스스로 어이없이 걸어 들어간 선거가 2002년 대통령 선거였다.

 

이회창의 기세는 그가 도전자이고 공격자였던 시기에 최고봉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직은 실제 대통령이 아니었던 이회창이 진짜로 대통령이 된 것처럼 방어자로, 수비자로 자세를 전환하면서 그의 비참한 추락이 시작되었다. 그는 귀족이어서, 주류여서 패배한 게 아니었다. 이른바 ‘대세론’에 도취해 현재를 지키려 들면서 미래를 잃어버렸다. 


김영삼과 박근혜의 성공한 차별화, 정동영과 유승민의 실패한 차별화

 

역동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치적 리더십은 현재의 강자 즉 살아있는 권력에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그러한 과정의 결과물로 탄생하기 마련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은 심지어 정권 내부에서도 뚜렷이 목격된다.


3당 합당을 강행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이후 나날이 존재감이 미미해지던 김영삼은 현직 대통령 노태우가 황금알을 낳는 이동통신 사업권을 사돈이 경영하는 선경그룹(현 SK 텔레콤)에 몰아주려고 시도하자 여기에 강력히 반발하는 초강수를 띄우면서 불리하게 돌아가던 민자당 내의 역학관계를 일거에 뒤엎었다. 박근혜는 역시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이 세종시 건설을 무산시키려 획책하자 MB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듦으로써 나중에 집권 여당의 대권후보 자리를 무난히 차지할 수가 있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현직 대통령 노무현과의 차별화를 공공연히 도모했던 정동영과 현직 대통령 박근혜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유승민은 ‘배신자 프레임’에 말려들어 길고 어두운 쇠락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은 살아있는 권력과 싸우며 담대하고 결연한 도전자로 나서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당장의 안전 제일주의와 안정희구 심리에 굴복해 “지금 이대로!”를 외치며 관리에 들어가면 백이면 백, 집권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낙연 대세론은 꺾였다. 명목가치가 아닌 실질가치에서 이재명의 몸값은 이낙연의 주가를 압도적이고 결정적으로 추월했다. 이재명이 소위 골든크로스(Golden Cross)를 맞이한 것이다.


역전당한 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재역전을 위해서는 닥공, 곧 닥치고 공격뿐이다. 운동경기에서의 공격은 상대 혹은 상대팀이 표적이 된다. 이와는 달리 정치에서의 공격은 살아있는 권력을 겨눠야만 한다.

 

유승민과 정동영의 차별화의 문제점은 차별화 자체에 있지 않았다. 시점이 턱없이 잘못되었다. 너무 늦은 차별화였다. 그들은 권력의 서슬이 시퍼럴 때가 아니라 정권이 하산하는 길에 접어들었을 적에 차별화를 꾀했다. 그로 말미암아 ‘배신자 프레임’의 올가미를 피해갈 수가 없었다. 반면에 김영삼이 노태우와의 차별화에 단호히 착수했을 무렵 여당 안에서 민주계는 민정계와 비교해 절대 열세였다. 절대 열세의 위치인 상황에서 차별화를 과감히 모색한 덕택에 YS는 ‘배신자 프레임’의 저주를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2020년 현재 한국정치의 최대 기득권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한국사회 최대 기득권 세대는 586 세대다. 한국경제 최대 기득권 계급은 철밥통 공무원들이다. 여의도 정치권 최대의 기득권 정파는 친문세력이다.

 

기득권 집단의 특권을 감싸주고 반칙을 감춰주며 출현하고 성장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모든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기득권 집단의 특권을 혁파하고, 반칙을 폭로하는 힘들고 위험한 도전자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며 인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어나갔다. 이집트 문명이 무섭고 사납게 범람하는 나일강의 선물이었듯, 카리스마는 민중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과 모험의 산물이었다.

 

이재명은 남한 사회의 평범한 인민대중의 인식에서 기득권 집단의 특권 체제를 분쇄하고, 반칙 행위를 근절하는 창조적 파괴자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했다. 이것이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이재명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의 본질적 원천이다. 이재명은 청와대를 비롯한 문재인 정권 수뇌부가 교묘하게 추진하는 그린벨트 해제 정책을 즉각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선동적 파퓰리스트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의 새로운 진화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낙연은 도전이나 모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는 왜 도전과 모험을 기피할까? 분노에 서툰 탓이다.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권력에 분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은 권력에만 분노하면 필부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분노할 때에만 필부는 영웅으로 거듭난다. 살아있는 권력에 분노하는 일, 이낙연이 이재명에게 재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비장의 승부수이다. 때마침 이재명은 우리 시대의 내로라하는 살아있는 권력들과 비겁하게 손잡은 김부겸과 살짝 눈을 맞추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른 터이다.

 

정치컨설턴트 김헌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분노한 대중의 사회’로 통찰력 있게 규정했다. 분노한 대중에게 안정적 관리능력을 과시하는 건 목마른 사람 앞에서 제습기 선전하는 짓만큼이나 개념 없고 맥락 없는 일이다. 고로 도전하면 살고, 관리하면 죽는다. 분노한 대중의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정치의 오래갈 뉴 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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