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동안 이어진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학대가 의심될 경우 부모와 아동을 분리하는 ‘즉각 분리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학대 아동을 수용할 시설은 전국 76곳에 불과해 3만건이 넘는 학대피해아동을 감당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 양은 입양된 후 10개월 동안 학대를 받다 온몸에 멍이 든 채로 양천구 목동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부검결과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었다.
서울 영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교사, 소아과 의사 등으로부터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3번이나 받았지만, 무혐의 종결 처리해 비판을 받고 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12명 중 5명은 이달 중순 예정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나머지 7명은 ‘주의’와 ‘경고’ 등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법사위원 간담회'에서 ”소아과 의사마저 112에 신고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지경인데도 경찰은 안이하게 방치했다. 이쯤 되면 방치 넘어서 방조범이자 공범"이라면서 "경찰과 국가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엄격한 책임 물어달라"고 말했다.
전국 73개 학대피해아동쉼터, 1044명 보호··· 그러나 같은 해 아동학대 사례 3만건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복지법 개정안으로 1년 내 아동학대가 두 번 신고되는 등 학대가 의심될 경우 부모와 아동을 분리하는 ‘즉각 분리제도’가 3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피해아동을 수용할만한 시설은 부족하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9년 전국 73개의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총 1044명의 아동을 보호했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집계된 아동학대 사례는 3만45건에 달한다. 이 중 아동의 가정 내에서 발생한 사례가 2만3270건(77.5%)이다. 부모에 의한 학대는 2만2700건(75.6%)이며, 친부가 1만2371건(41.2%)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친모 9342건(31.1%), 계부 557건(1.9%), 계모 336건(1.1%) 순이다.
쉼터를 확충하기 위한 정부 예산은 매년 늘고 있다. 지난달 2일 국회 의결을 거쳐 확정된 2021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을 보면 학대피해아동의 보호와 심리치료 등을 위한 쉼터 배정 예산은 86억 원이다. 지난해 76개소에서 올해 91개소로, 15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쉼터당 정원은 5~7명에 불과해 여전히 한해 3만명이 넘는 학대피해아동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다.
또,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퇴소한 아동들의 거주 기간을 보면 1개월 미만이 37.8%로 가장 높았으며, 쉼터에서 보호를 받은 아동 중 45.9%가 원가정으로 복귀했다. 현 아동복지법 4조에는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여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는 원가정 보호원칙이 명시돼 있다.
이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현행 아동복지법은 학대 가해 부모가 요구할 경우 학대당했던 가정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이른바 원가정 보호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개정이 시급하다”며, “모든 아동은 가정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양육 및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로 선임된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학대피해아동을 보호자로부터 분리·보호하기 위한 학대피해아동쉼터를 증설해 신속한 보호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며, “현재 334명에 불과한 아동보호전담요원을 확충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전문 인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