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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에게 ‘주거와 일자리’, ‘자립심과 소속감’을··· 한사랑 가족 공동체, 그리고 두부공장
  • 서진솔 기자
  • 등록 2020-07-02 15: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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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11월 인근 빈민 식당 운영 후 남는 시간 빌려 공장 운영 시작
  • 개인 공간·사생활 보장하며 고독감 느끼지 않도록 '저금·식탁·영적 공동체' 유지

공장장 이충현(가명) 씨가 6월 24일 서울 중구 '한사랑 가족 공동체' 두부 공장에서 끓인 콩물에 응고제인 간수와 소금을 넣고 있다. (사진=김대희 기자)두부 공장 안은 기계 열기로 잠시만 머물러도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수증기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하고 있는 공동체 식구들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힘이 넘친다.

 

한사랑 가족 공동체가 운영하는 두부 공장은 오전 6시부터 불이 켜진다. 공동체 식구 3명은 여름엔 6~7시간, 겨울엔 11~12시간 물에 불린 콩을 씻는 작업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맷돌 기계로 간 콩물을 비지와 분리하고 스팀 기계로 10분을 끓인다. 다 끓인 콩물을 체로 거른 다음 응고제인 간수와 소금을 넣고 성형 틀에 부어 누르면서 모양을 잡는다. 성형 틀에서 5분에서 10분 정도 지나면 두부 한 판이 만들어진다. 한판을 칼로 자르면 총 12모가 나온다. 그렇게 만든 두부를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물에 넣고 식힌다. 이 과정을 하루 10번 이상 반복한다.

 

공장장 이충현(가명) 씨는 사업에 실패하고 공동체에 오게 됐다. 공동체 대표인 윤석찬 신부가 과거 두부 만드는 일을 해봤던 경험을 살려 공장을 운영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는 망설임 끝에 수락했다. 이 씨는 “과거 (일할 때는) 돈을 보고했다면, 지금은 일하면서 느끼는 (정신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동체는 이처럼 머물 곳이 없는 취약계층에게 거주할 수 있는 집과 일자리를 찾아준다. 첫 두세 달은 방세와 용돈을 지원하면서 일할 수 있는 식구와 없는 식구를 구분한다. 일할 수 있는 식구는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고, 없는 식구는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한다. 이 과정을 통해 모두가 방세와 용돈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된다. 자립성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약 7년 전 빈민 식당 ‘프란치스코의 집’ 공간 빌려 시범 운영 개시 

 라지 씨가 맷돌 기계로 간 콩물을 또 다른 기계로 비지와 분리하고 있다. 비지는 인근 성당 신자들에게 주거나 공동체가 운영하는 파주 농장 옆 굼벵이 농장의 굼벵이 배설물과 교환한다. 파주 농장은 굼벵이 배설물을 거름으로 사용하고 굼벵이 농장은 비지를 굼벵이 먹이로 배급한다. (사진=김대희 기자)

윤 신부와 이 씨가 의기투합해 두부 공장 운영을 시작한 시기는 약 7년 전인 2013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입이 확실치 않았던 시작 단계엔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근 빈민 식당 ‘프란치스코의 집’을 빌려 사용했다. 식당 운영을 모두 마친 저녁 시간에만 임시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집기도 최소한만 마련했다.

 

윤 신부는 “(두부를) 판매할 회원들을 모집하며, 6개월 운영하다 보니 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동체 근처에 공간을 마련해 (공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장 노동자 중 한 명은 인도 국적을 가진 라지 씨다. 성가소비회 수녀들이 난민 신청을 도와주며 돌보다가 힘에 부쳐 역할을 공동체에 일임했다. 난민 심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공장장 이충현 씨와 서로 말은 안 통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식구의 도움도 받고, 손짓으로 소통하며 공장을 함께 이끌어 나간다.

 

두부를 한 모씩 포장하고 냉장고에 넣으면 배달을 담당하는 식구 4명이 구매를 신청한 회원들에게 차례로 전달한다. 최근 코로나19로 판매량이 줄어 하루 평균 120~130모 정도를 생산한다. 생산직 3명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일과를 모두 마친다.

 

‘저금·식탁·영적 공동체’ 참여 통해 고독감 느끼지 않도록

 이충현 씨가 성형 틀로 모양을 잡은 두부를 자르고 있다. 두부 한판을 칼로 자르면 총 12모가 나온다. (사진=김대희 기자)

코로나19 여파에 공동체 두부 공장 수입도 타격을 받고 있다. 전체 60~70% 매출을 차지하는 정기 회원들의 구매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나머지 30~40%에 해당하는 서울시 내 성당, 기타 모임 등 비정기 구매는 집합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많이 감소했다. 

 

윤석찬 신부는 현재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면 수입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서도 두부 공장의 주요한 목적은 식구들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와 만족, 성취감을 찾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 신부는 “공동체 식구가 되기 전 현실이 와해되고 가정이 깨진 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새로워지는 모습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부 공장 노동자들의 월급은 공동체에서 관리한다. 공장 직원들을 포함해 공동체 식구들은 기초생활 수급비, 일자리 수입 등을 저금해야 한다. 남용 및 오용 방지, 재정관리 등을 위해 의무화하고 있고, 매주 사용할 용돈은 주일 미사 후 지급한다. 용돈은 자유롭게 사용한다.

 

이처럼 한사랑 가족 공동체는 식구들에게 공간과 사생활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한편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저금·식탁·영적 공동체 유지한다. 고독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보조하는 것이다.

 

열기로 가득한 공장 안에서 일하는 공장장 이충현 씨는 냉방 용품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밝게 웃으며 답했다. "선풍기를 써도 스팀 때문에 소용없어요. 더워도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포장까지 모두 마친 두부 모습. 최근 코로나19로 판매량이 줄어 하루 평균 120~130모를 생산한다. (사진=김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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