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성기의 국가에 문고리 권력은 없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소아시아로 도망가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례로 페르시아 왕은 이 불구대천의 원수의 목에 2백 탈란톤의 현상금을 내건 터였다. 1탈란톤은 은화 6,000개에 해당하는 값이었으니 사냥꾼들 입장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걸어 다니는 로또와 마찬가지였다.... 2021-04-29 공희준
- 배수진의 원조는 중국이 아니었다 안 되는 집안일수록 불화가 잦은 법이다. 선거에서 패배했거나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에서 당내 파벌싸움이 더욱더 빈번해지는 이유다. 이와 대조적으로 승리의 희망과 성공 서광이 엿보이면 서로 간의 해묵은 원한도 덮어두기 마련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적인 아리스테이데스를 도편추방을 시켰다. 그가 지질한 소인배였다면 아리... 2020-11-10 공희준
- 아테네의 강남좌파도 돈에 약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손님들을 접대하는 연회를 쉬지 않고 벌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음식을 마련하는 데 쓰일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심지어 공공연한 공갈협박마저 서슴지 않았다. 필리데스는 말을 키우는 조련사였는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점찍은 망아지를 내어주지 않다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당신 식구들까... 2020-10-29 공희준
- 테미스토클레스, 김대중과 김영삼을 섞어놓다 “내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사셨다.” 필자는 「김대중 자서전」의 서두 부분에서 이 구절을 접하고 마치 둔기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 충격은 이내 먹먹함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반세기 가까이 우리나라 국민 거의 전부가 알고 있는 유명 정치지도자로 활동해왔으며,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고서 마... 2020-10-13 공희준
- 전쟁의 패배 앞에는 정치의 타락이 있다 전성기의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는 개인기와 조직력의 차이였다. 페리클레스가 죽자 아테네는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숨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그가 일궈놓은 광대한 제국도 해체됐다. 반대로 카이사르가 암살당했어도 로마는 쇠망하지 않았다. 아테네가 만끽한 제2의 전성기는 알키비아데스의 현란한 개인기에 철... 2020-10-08 공희준
- 페르시아의 ‘강남 스타일’ 스파르타에 시종일관 굴종적 자세를 고집한 과두제적인 귀족정은 아테네 민중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쳐 얼마 못가 와해되고 말았다. 알키비아데스의 추종자들이 민주파로 정치적 노선을 변경한 일은 귀족정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민중은 알키비아데스가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신속히 귀국해 권력의 불안한 공백을 메워... 2020-09-27 공희준
- 알키비아데스, 쿠데타를 무산시키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하면 안 된다고 수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때로는 간절한 애원조로, 때로는 노골적인 협박조로 설득했다.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연설가였던 트라시불로스가 그를 수행하면서 인간 확성기 노릇을 자청했다. 아테네가 자중지란의 내전에 휩싸이면 주적인 스파르타가 그 틈을 이용해 에게 해 주변의 주요한 섬들과 핵심 도시들을 손쉽게 어부지리로 차지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 섞인 논리와 전망이 병사들의 유혈 쿠데타를 차단하는 데 주효했음은 물론이다 2020-09-26 공희준
- 대중독재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말살하는가 시칠리아 원정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된 인물은 하필이면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니키아스였다. 이는 민중이 이번 정복전쟁의 무모함과 위험성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했다는 뜻이었다. 익명의 민중과 독재적 폭군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니키아스는 민중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존재인지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 2020-09-18 공희준
- 젊은이여, 너 자신을 알라 알키비아데스 주위에는 아테네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인물들이 쉬지 않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에게 매료당한 건 단지 그의 잘생긴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외면적 조건을 발가락의 무좀균만도 못한 하찮은 요소로 치부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사실이 그 생생한 증거였다. 소... 2020-09-08 공희준
- 김종인과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닮았나 알키비아데스는 서력으로 기원전 450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역시 서력으로 기원전 404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던 소아시아 반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알키비아데스 가문의 시조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장수들 중에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용맹을 떨쳤던 아이아스였다고 한다. 아이아스는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신화 속의 ... 2020-09-01 공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