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와 알키비아데스, 수처작주는 같았지만 안도키데스는 저명한 연설가였다. 그는 성상 훼손 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당해 감옥에 갇혔는데, 입심과 견주어 지력은 떨어지는 사내였다. 티마이오스 역시 동일한 죄목으로 수감되었다. 그는 명성과 언변 전부에서 안도키데스에게 뒤쳤으나 다른 한 가지 종목에서 비교우위에 있었다. 머리의 영민함 즉 두뇌의 회전속도였다. 티미이오스는 ... 2020-09-20 공희준
-
대중독재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말살하는가 시칠리아 원정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선출된 인물은 하필이면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니키아스였다. 이는 민중이 이번 정복전쟁의 무모함과 위험성을 어렴풋이나마 인지했다는 뜻이었다. 익명의 민중과 독재적 폭군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니키아스는 민중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책임한 존재인지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 2020-09-18 공희준
-
정세균을 재평가한다 586들이 현정화라면 현정화인 거다 「넘버 3」는 김영삼 정권 말기에 극장가에서 개봉된 영화다. 한석규와 최민식이 조직폭력배의 중간 보스와 조폭 잡는 특수부 검사 역할을 각각 연기한 이 영화는 권력의 비정한 생리를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희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풍자극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2020-09-17 공희준
-
아테네의 월남전이 시작되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 대표단의 뒤통수를 쳐서 아테네의 세력권을 신장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공적 분야에서 그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낸 훌륭한 애국자였다. 반면에 그는 사생활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기가 어려웠다. 사치와 방탕은 기본이었고, 하고 다니는 복장은 영락없는 제비족이었다. 알키비아데스의 문란한 사생활에 질겁한 ... 2020-09-15 공희준
-
알키비아데스, 뒤통수 치기의 묘미를 보여주다 알키비아데스는 공직에 입문하자마자 단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물들을 단박에 능가하는 발군의 역량을 과시했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당하지 않은 두 명의 경쟁자는 니키아스와 파이악스였다. 전자는 검증된 경륜으로 이미 예전부터 성가를 높여왔으며, 알키비아데스와 비슷한 또래인 후자는 찬란한 가문의 후광... 2020-09-14 공희준
-
장인을 폭행해 아내와 결혼한 나쁜 남자 소년기를 벗어나 청년기에 갓 들어선 알키비아데스는 옳은 얘기를 싸가지 없이 한다는 부분에서 참여정부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연성시켰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새롭게 편집할 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한 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독설을 날렸다. “호메로스의 작품을 개선시킬 재주가 있는 분께서 왜 ... 2020-09-11 공희준
-
젊은이여, 너 자신을 알라 알키비아데스 주위에는 아테네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인물들이 쉬지 않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에게 매료당한 건 단지 그의 잘생긴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외면적 조건을 발가락의 무좀균만도 못한 하찮은 요소로 치부한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사실이 그 생생한 증거였다. 소... 2020-09-08 공희준
-
[기자수첩]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휴진을 강행하고 있는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에게 ‘밥그릇 싸움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집단행동을 단순히 이권 챙기기로 치부해선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계급의식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일 기자회견에서 부동산정책과 인천국... 2020-09-03 서진솔
-
문재인 정권, 애견인과 애묘인도 싸움 붙일 기세 어부지리는 나의 힘문재인 대통령이 분할통치 즉 갈라치기의 대가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영어권 국가들에서 “Divide and Rule”로 불리는 갈라치기는 적들끼리 또는 피치자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교묘하게 유도해 상대방의 힘을 빼놓은 다음 특정 집단이나 특정 정권이 손쉽게 어부지리를 취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영세... 2020-09-03 공희준
-
김종인과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닮았나 알키비아데스는 서력으로 기원전 450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역시 서력으로 기원전 404년에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던 소아시아 반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알키비아데스 가문의 시조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장수들 중에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용맹을 떨쳤던 아이아스였다고 한다. 아이아스는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신화 속의 ... 2020-09-01 공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