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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2030의 관심에서부터 서진솔 기자 2020-06-11 16:26:53

4년이 지났다. 김군을 기억하는 4주기 추모 기간은 지난달 말까지였다. 스크린도어 정비 중 사고로 사망한 김군은 서울메트로 용역업체 은성PSD의 계약직 직원이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산재 사망자 수는 562명이다. 1년 전보다 20명 증가했다. 하루 평균 6명 이상이 사망하는 셈이다.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올해 1월 시행됐지만, 산재 사망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해당 법안조차도 2018년 12월 태안화력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사망하고 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김군, 김용균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단연 비정규직, 용역업체 등 노사 계약 관계다. 동일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보다 못한 임금과 대우를 받는 불공정의 문제인 것이다. 산재 사고는 매일 반복되고 있지만, 노사 계약에 대한 문제 제기에 동조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공정, 불공정을 둘러싼 이슈는 최근 1년간 언론 보도를 장악하며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시민 사회를 거대한 두 집단으로 양분시켰고, 이에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그 이슈의 중심에는 정의와 공정을 중시한다고 여겨지는 2030세대가 있었다.

 

입시, 취업 관련 불공정 문제에 무조건 반사로 반응하는 2030세대지만, 비정규직 등 노동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이 노동 계약의 차이를 공정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과 능력, 그리고 그에 따라 마땅히 주어지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정’을 곧 ‘능력주의’로 여기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강남좌파2’를 통해 2019년 10월 ‘특권 대물림 교육체제 중단 국회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가 한 말을 소개했다.

 

“울산대 앞에서 출신 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서명 캠페인을 한 적이 있어요. 지방대이니만큼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의외로 반대하는 쪽에 학생들이 스티커를 많이 붙이더라구요. 법에 대해 설명을 해줬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스카이 대학 나온 애들이 그만큼 성실하고 머리 좋고 실력 좋으니 특별대우 받는 것이 공정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 기성세대는 이 젊은 지방 대학생들에게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강 교수는 이를 능력주의 신화의 마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신화에 감염되면 그 어떤 특권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심성을 갖게 되고, 자신이 할 일은 오직 그 특권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마력은 2030세대가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불공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든다. 그들에겐 몽니로 들릴 뿐이다. 모든 것이 노력과 능력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의 허구성에 대한 연구와 비판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뻗쳐있는 ‘능력주의 마력’은 강력하다.

 

구의역 내선 9-4 승강장에 조성된 ‘추모의벽’에서 김군의 ‘엄마’를 만났다. 포스트잇에 적은 짧은 글귀를 통해서다. 오늘도 하루 6명 이상의 노동자는 산재로 사망하고 유가족은 슬픔과 미안함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공정을 부르짖는 2030세대가 비정규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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