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을 잇는 것은 철탑의 고압전선이었다. 작은 섬 뒤로 영흥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석탄재와 먼지, 소음으로 피해를 호소하던 영흥도 주민에게 또다시 쓰레기매립장이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혐오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천시는 친환경 시설로 짓겠다고 선언했지만 주민 반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6일 오후 1시께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에 들어서자 쓰레기매립장 건설 반대 현수막부터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석탄발전소 때문에 죽겠다!’(영흥면 총동문회) ‘쓰레기 매립장을 시청앞으로’(영흥 축구 동호회 일동) ‘우리마을 앞마당에 쓰레기 매립장이 왠말이냐!’(외1리 주민일동).
현장에서 만난 영흥도 주민들은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났다’는 말로는 부족해 보였다. 이날도 쓰레기매립장건설반대투쟁위원회(건투위)는 시청 앞에서 3차 규탄 집회를 예정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집회를 취소했다. 대신 영흥면 영흥늘푸른센터 앞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매립장 건설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정윤기 영암어촌계장은 마이크를 들고 박남춘 시장에게 영흥도 주민들의 분노를 알려야 한다며 반대 서명에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정 계장은 이날 “코로나19 확산때문에 집회를 열기가 어렵다. 영흥도 주민들의 반대 서명을 받아서 박남춘 시장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정 계장을 비롯한 영흥도 어촌계장들은 지난 18일 오전 수협 회의실에서 영흥수협어촌계협의회의를 열고 영흥도 쓰레기매립장 지정 결사반대 어업인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해양생태계를 파괴시켜 어업생존권을 위협하는 쓰레기 매립지 지정을 전면 취소할 것”을 인천시에 촉구했다.
“매립장 건설하려면 영흥도 주민 다 죽이고 해라”
서명에 나선 한 주민은 “가뜩이나 석탄발전소 때문에 영흥도 주민들 건강이 나빠졌는데 쓰레기까지 받으라고 하면 주민들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며 “매립장을 지을 거면 주민들을 죽이고 지으라”고 분노했다.
건투위는 이날 시청 앞 집회에 사용할 현수막에 주민들의 반대 의사를 담긴 메시지를 적기도 했다. 한 시민은 하얀색 페인트로 ‘결사 반대’ 등의 문구를 적었다.
인천시가 ‘쓰레기 독립’을 선언하면서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에 ‘에코랜드’라는 이름으로 자체 매립지 건립을 선언했다. 쓰레기는 처리되어야 하지만 영흥도에 쓰레기를 묻어야 한다는 당위는 어디에도 없다. 영흥도 주민들을 더 분노하게 한 것은 인천시가 이곳을 쓰레기 매립장 부지로 선정할 때까지 어떠한 접촉이나 주민 설득 작업도 없었다는 것이다.
건투위 임현선 사무국장은 “인천시나 박남춘 시장이 매립지 선정 전후로 일체의 연락이 없었다”면서 “주민을 무시한 처사에 어르신들이 직접 1인 시위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라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건투위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집회는 자제하고 1인 시위나 기자회견으로 박남춘 시장에게 매립지 건립 지정 취소를 압박할 계획이다.
‘에코랜드’ 주민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인천시가 선정한 자체 매립지 에코랜드는 영흥면 외리 248-1번지 일대. 현장에 가까워지자 외1리 마을회관에 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외1리(소장골) 두 번 죽기는 싫다’(외1리 환경피해대책위원회). 마을회관은 노인정 겸 대책위 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마을회관은 반대 서명을 하러 갔는지 주민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화력발전소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또다시 매립지가 생긴다니 두 번 죽기 싫다는 외침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외리는 옛날에 서당이 있어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으므로 서장골(書藏洞)로 불렀다 하고,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지내던 정자가 있어 이를 서정(書亭)이라고 하여 서정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인천시청 지명유래 발췌). 시대가 변하면서 선비의 마을은 이제 매립장으로 변할 처지에 놓였다.
마을회관에서 500여m를 더 가니 갈대밭 숱으로 둘러쌓인 넓은 부지가 나왔다. 그 뒤쪽으로 영흥화력발전소가 보였다. 한 눈에도 꽤 넓어 보이는 부지 앞에 철조망이 처져있고 입구엔 매립지 공모를 신청한 ㈜원광인바이로텍이 붙여놓은 출입금지 팻말이 보였다. 주변에는 새우 양식장과 외1리 주민들이 추진하는 어촌체험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소로길에 인적은 없었다.
원광인바이로텍은 현재 영흥화력발전소의 회처리장 대상 부지를 소유한 회사로 매립지 선정 발표 전까지 한국남동발전(주)과 소유권이전에 따른 가등기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영흥화력발전소 1~2호기는 2034년, 3~4호기는 2038년 종료돼 더 이상 회처리장 설치가 불가한데 이번 매립장 공모에 이 회사 한 곳만 공모에 응했고 선정됐다.
화력발전소 때문에 오랜 주민 갈등 겪었는데
외1리는 영흥화력발전소와 인접해 있어 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와 석탄가루로 인한 피해를 호소해왔다.
지난 2017년에는 외1리 부녀회가 심어놓은 배추에 석탄분진이 덮어버린 뒤로는 배추조차 심지 못하고 있다. 바람이 마을 쪽으로 불면 창문을 열지 못하는 건 일상이고 빨래조차 널지 못한다고 마을 주민들은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립지가 들어선다니 마을 공동체가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매립지로 조성한다고 하지만 대형 쓰레기 차량이 마을을 오가면서 먼지와 소음으로 인한 피해도 겪게 될 것이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으로 주민간 갈등으로 번진 사례가 있어 이번 매립지 건설로 이러한 찬·반 갈등이 재현되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자리 등을 얻을 수 있게 된 마을 주민과 환경오염에 따른 피해 입은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리면 또 다른 불씨가 될 공산이 크다.
영흥도 한 주민은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때도 그렇고 이번 매립지 건립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다. 일자리도 생기고 먹고 살거리가 생겨나서 반기는 주민도 있지만, 환경오염에 따른 어업 생존권을 위협받은 어민들은 반대할 것이다”라며 또 한번 주민갈등이 재현될 것을 우려했다.